이 책의 원제는 Stuff White People Like로 직역하면 백인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저자가 운영하던 동명의 블로그 포스트들을 모은 책이다. 2008년에 원서가 출간됐지만 책에서 다루는 150개의 유무형의 재화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인기 있는 것들이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나로서는 저자가 의료보험과 대중교통의 옹호자들을 비꼴 때는 동의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이 책에서의 전반적인 비판들이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2019년도에 이 책을 읽다보면 역시나 11년 사이에 확 바뀌어버린 미국의 정치 지형이 생각난다. 저자가 신나게 놀리는 백인 중상류층들은 몇 년째 정치 뉴스를 편한 마음으로 못 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 사실 미국 국적의 백인 중상류층이 아니더라도 뉴스를 가끔씩이라도 보는 사람이라면 요즘 국제정세에 대해서 걱정이 없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전세계적인 위기의 요인 중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건강했던 미국 사회의 분열과 혼란이라고 여겨지는데, 자신들은 항상 큰 이득만 누리면서 이를 은연중에 부추겼던 백인 중상류층들에게도 원망을 안 하기가 힘들다.
한국에서는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백인 중상류층의 문화가 그대로 재현되지는 않는다. 백인 중상류층은 부모로부터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아서 비교적 손쉽게 우월한 학벌과 섹시한 커리어를 얻고, 이를 기반으로 기득권을 재생산해내며, 한편으로는 우월감과 자의식을 충족하기 위한 비대한(하지만 얄팍한) 문화 생활을 해나간다. 한국의 중상류층들은 아직은 비슷한 계층에 속한 백인들의 그 얄팍한 문화 생활도 제대로 따라하지 못 하고 있다. 한국에서 문화적 취향에 제일 민감한 집단은 아마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룸펜들이 아닐까 싶은데, 이들은 백인들처럼 돈과 능력도 없고, 문화적 취향도 뒤떨어진다.
이 책의 백인스러운 점 중 하나는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이 비판하는 백인이고, 고학력이며, 캐나다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으며, 블로그를 열심히 하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이 글들 자체가 일종의 자기 비하 유머인 셈인데, 자기 비하 유머 역시 백인들이 좋아하는 150가지 중 하나로 이 책에서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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